아산 봉곡사 소나무숲 으로의 여행
"여행은 단순, 떠남이 아닌 그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다른생 에서의
삶을 이 생에서 한번 살아보는것! 그것이 진정한 여행이다"
어느 여행작가의 말처럼무엇을 즐기기 위해 여행을 계획한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관광일지도 모르겠다.
흔히 우리는 역사의 흔적이 문화재에만 또렷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도 역사의 한순간을 분명
하게 기억하고 있다.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에 위치한 봉곡사 숲, 역사의 아픔을 이겨낸 훈장처럼 저마다
몸에 상처를 지닌 채 봉곡사 소나무는 말 없는 증인처럼 묵묵히 숲을 지키고 있었다.
아...이렇게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을..
봉곡사 숲의 소나무는 다른 곳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밑동에 V자로 움푹 팬 자국이 나무마다 새겨져
있다. 어림잡아도 성인 머리 크기 정도는 된다. 어떤 나무는 V자가 변해 우리가 흔히 하트모양으로 부르는♥자
로 변해있다. 자연적으로 생겼다고 하기엔 그 모양이 인위적이고 흔적 또한 깊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반에 일제가 석유 대신 쓰려고 송진을 채취했던 흔적이란다.
그 숲이 봉곡사 소유라 밑동을 다 베진 못하고 나무에 생채기를 내서 송진을 받아갔던 것 같다.
당시 일제는 한반도의 소나무 숲에서 마구잡이로 송진을 채취하거나 나무를 벌채해 갔다. 그래도 봉곡사 숲이
벌채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숲이 봉곡사를 감싸 안고 지켜주듯이 사찰도 숲을 지키기위해 애썼기
때문이다.봉곡사 숲은 우리나라 토종 소나무 천연림 이다. 평균높이 15m 정도에 수령은 아마 100여년이 훨씬
넘었을.. 송진 채취 흔적은 마치 일제의 만행을 꿋꿋이 지켜낸 훈장 같기도 하다
수백년은 묵었을법한 고목나무 한그루가 세월의 흐름을 감내하며 소나무 숲길에 서있다
소나무숲길 여기저기엔 이름모를 야생화가 ....
숲 입구에서부터 700m, 약 20~30분을 걸으면 봉곡사가 나타난다. 봉곡사는 호젓하다 못해 고요하다.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에 도선국사가 지은 이 절은 고려시대 ‘석암사’로 불리다 조선 정조 때 ‘봉곡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찰은 임진왜란 때 폐허가 돼 인조 24 년에 고쳐진 것이다. 오래된 역사만큼 절 안 에서는 구수한
소박함이 묻어나온다. 사찰 앞으로는 하늘을 찌를 듯 전나무가 솟아 있고 뒤편으로는 대나무 숲이 푸근하게
감싸고 있는곳 봉곡사..
이렇게 고즈넉한 봉곡사에서 다산 정약용(1762~1836)은 1795년 실학자들과 함께 공자를 논하고 성호
이익의 유고를 정리하는 강학회를 열었다. 또 만공(1871~1946)스님은 1895년 이곳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한 송이 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봉곡사 숲길을 걸으며 일제강점기 역사의
아픔을 느끼고 시대의 교훈을 배워가고 있다.
봉곡사 가는 길
온양온천역까지는 서울에서 수도권 전철이 다닌다. KTX를 탈 경우 천안아산역에서 온양온천역까지
버스나 지하철로 환승해야 한다. 온양온천역 앞에서 봉곡사행 시내버스는 하루에 3번 다닌다.
오전 9시, 오후 12시, 오후 6시에 운행되므로 시간에 유의해야 한다.
아니면, 유구행 시내버스를 타고 큰길에서 봉곡사까지 걸어들어와야 한다. 승용차를 이용한다면
경부고속도로를 타다가 천안 IC로 나와 21번국도를 통해 아산으로 들어온다.
다시 송악면 방면으로 39번 국도를 타면 봉곡사에 다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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