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경상도

조선조 사립학교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에 가다

cowboy 2009. 11. 3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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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일찍 안동을 찾아 길을 나섰다.

서울역 14번 출구에서 예정된 관광 버스편으로 안동을 향해 출발..

안동은 지인의 고향중에 한곳으로 가끔경조사 일로 들려봤던곳이나 관광으로 오기는 처음인것 같다.

오전8시에 서울역을 출발한 버스는 11시를 조금넘어 안동에 도착하니 아침도 거르고 나온지라 배가

고파온다..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일단 점심을 먹고 슬슬 안동의 숨겨진 문화와 유적등을 찾아 나서 본다..

 

도산서원(陶山書院)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李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세운 서원,으로서

사적 제170호. 1574년(선조 7) 지방유림의 발의로 도산서당(陶山書堂)의 뒤편에 창건하여 이황의 위패를 모신곳이다.

 

1575년 선조로부터 한석봉(韓石峰)이 쓴 '도산'(陶山)의 사액을 받았으며, 영남유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1969~70년 정부의 고적보존정책에 따라 성역화 대상으로 지정되어 대대적인 보수를 했다.

경내의 건물로는 이황과 제자 조목(趙穆)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상덕사(尙德祠:보물 제211호), 서원의 강당인

전교당(典敎堂:보물 제210호),향례(享禮) 때 제수(祭需)를 두던 전사청(典祠廳), 유생들이 거처하던 동재(東齋)·,서재

(西齋), 장서(藏書)를 보관하던 광명실(光明室)·장판각(藏板閣),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 제자들이 거처하면

공부하던 농운정사(隴雲精舍) 등이 있으며 .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는곳이다.

 

천원짜리 지폐 구권의 뒷면에 인쇄되어있는 도산서원의 전경이다

 

 

 

이곳이 도산서원의 입구인다.

 

시사단(試士壇)

도산서원의 맞은편 강 건너 석축 위에 지어진 건물로서. 1792년(정조 16년) 규장각 각신 이만수를

도산서원에 보내 과거시험을 보게 한 곳이란다. 멋진곳아닌가? 저런곳에서 과거시험보면 나도 급제 하겠네 ㅋㅋ

 

도산서원의 앞 마당이며 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마당쓰는 사람이 있었다는데 ㅋㅋ안보인다

 

서원 앞마당에 있는 능수버드나무600여년이 넘었단다 ..아직도 생생하던데...몇년을 더 살수 있을런지..

 

 몽천(蒙川)

산골에서 솟아나는 바가지 샘을, 몽괘의 의미를 취하여 몽천이라고 한다, 몽매한 제자를 바른길로 이끌어 가는 스승의

도리와, 한방울 샘물이 솟아나와 수많은 어려움을 거쳐 바다에 이르듯이 제자들은 어리석고 몽매한 심성을 밝게 깨우

쳐서 끊임없이 노력하여 자신의 뜻을 이룩하라는 교훈을 주는 샘물이란다. 좀먹어볼랬더니 ...에이..

 

도산서당(陶山書堂)

퇴계선생께서 4년에 걸쳐 지으신건물로 몸소 거처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거처하시던 방은 완락재

하고 마루는 암서현 이라 하였다. 지난 7월 100 여년 만에 전면적인 보수공사를 하였단다. 이번엔 잘했겠지...

 

 

 

농운정사

농운정사는 제자들의 기숙사로 서당의 서쪽에 위치한다. 퇴계선생이 직접 기본설계를 하고 당시 용수사 승려였던,

법련과 정일을 임명하여 건립케 하였단다. 공 (工)자형의 대칭적 건물로 두개의 공간으로 나뉘는데, 각각 2칸의

온돌방과 앞으로 돌출된 마루한칸, 뒷쪽 봉당 한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부하던 동편 마루를 시습제(時習濟)라

하고, 서편 마루를 관란헌(觀爛軒)이라 하였다.건물 앞 기단 월대(月臺)에는 전돌을 깔았다. 이 기숙사에는 두개 반을

수용하였는데, 이같은 연립식의 기숙사는 소수서원에도 남아있다.  이때부터 연립주택이 생겨났나??

 

 

 

광명실(光明室)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서  현판은 퇴계선생의 친필이다. 동,서 두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습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누각식으로 지었다. 광명'은 많은 책이 서광을 비추어진다는 뜻으로 학문의  중요성과 보람을 잘 나타낸다. 

 

 

 

 교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진도문이다

 

동,서재(東,西齋)

도산서원의 유생들이 거쳐하면서 공부하는 건물로 지어진 집이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동편건물을 박약재,

서편건물을 홍의재 라 한다.

 

 

 전교당(典敎堂)

전교당은 도산서원의 강당으로 1576년에 건립되었으며, 정면에 걸린 편액이 당대의 명필인 한호(韓濩)한석봉의

글씨이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인데, 평면은 좌측칸의 2칸을 온돌방으로 구성하여

 한존재(閑存齋)라 이름을 붙이고 나머지 6칸은 모두 우물마루를 깔아 대청으로 꾸몄다. 온돌방의 전면에는 가운

설주가 있는 쌍여닫이 세살창을 설치하였고, 좌측면에는 각 칸마다 외여닫이 세살문을,벽장 좌측 벽에는 붙박이

광창을 달았다. 대청의 전면은 개방되어 있으나, 우측면과 배면에는 각 칸마다 둔테에 달린 쌍여닫이 판장문을

두고 문틀 중앙에는 가운데 설주를 설치하였다. 쪽마루는 건물 배면의 대청 뒷부분과 온돌방의 우측면에만 시설

하였다. 화강석 장대석으로 축조한 기단위에 자연석 덤벙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은 모두 각재를 사용

하였다. 가구는 5량가의 민도리계 팔작집이다. 대량위에는 윗면이 사절(斜切)된 동자주형 대공을 세워 종량과

중도리를 받게 하였으며, 종량위에는 안초공(按草工)을 둔 복화반(覆花盤) 형상의 대공을 세워 장혀와

종도리를 받았다. 

 

 

 

 

 

 

 

 장판각(藏板閣)

서원에서 찍어낸 책의 목판본을 보관하던 장소이며, 선조어필,퇴계선생 문집, 유묵, 언행록, 병서, 도산십이곡, 

등의 목판 2,790장이 보관되었다가 2003년 5월에 한국국학진흥원 으로 이관되었다.

 

퇴계 이황 선생은 연산군 7년(1501년) 현재의 안동시 온혜리에서 출생하여 선조3년(1570년)에 돌아가셨다.

34세에 과거에 급제, 단양군수, 풍기군수, 공조판서, 예조판서, 우찬성, 대제학을 지내으며 사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선생은 명종16년(1561년)에 본 도산서당을 세웠고 사후 4년만인 선조7년(1574년)에 문인과 유림이 서원을 세웠

으며 선조 임금은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원의 현판을 사액(賜額)하였다. 1970년 정부에서는 서원을 보수정화하여

성역화 하였다.

 

도산서원 관리사무소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게리 680번지

전화 : 054-856-1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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