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7일] 인천광역시 월미달빛누리 선교전래지·월미도 코스 팸투어
인천광역시의 문화 관광 자원 홍보를 위하여 관광설명회 및 팸투어(1박2일 일정)가
진행됩니다.
다음,네이버,싸이월드,티스토리,조인스에서 여행관련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들이
모임인 여행블로거기자단은 지자체및 기업에서 초청하는 팸투어에 참가 한 후 각자 운영
하고 있는 블로그에 관련 포스팅을 게재하여 온라인에서 정보를 검색하고 자가용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여행하는 개별여행(가족여행) 및 단체 여행객들에게 여행정보를
제공하여 지자체를 찾는 관광객 다변화 및 유치극대화를 꾀하고 지역의 다양한 연계관광
자원의 발굴 및 여행 활성화에 일조 하고자 합니다.
인천광역시 홍보 팸투어에서는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답동성당, 내동교회, 100주년기념탑,
월미도 문화거리, 월미도 유람선, 한국이민사박물관, 월미전통정원, 차이나타운야경, 등을
취재할 예정입니다.
l. 행사명: 월미달빛누리 테마투어 코스 중 선교전래지·월미도 팸투어
2. 장 소: 인천광역시 일원
3. 일시: 2010년 4월 17일(토)
@ 블로거 참가 인원 : 30명
@ 참가신청자격 및 선정 우선 순위
1. 여행블로거기자단 운영에 적극 협조하는 회원
2. 단장이 팸투어 참가를 특별 초청한 사람
3. 여행블로거기자단 카페 활동 및 블로그운영이 적극적인 회원
4. 여행블로거기자단 정회원 이상 회원
@ 참가신청 마감일 : 4월 13일 (화요일) 13시
@ 팸투어 참가회비: 10,000원(회칙에 의한 기자단 운영경비)
@ 일반진행경비는 주최 측에서 부담 합니다
@ 준비물 : 카메라와 간단한 필기도구, 세면도구(수건포함)
@ 참가자 할일 : 팸투어 참가후 일주일 이내에 두 개 이상의 참가
후기를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와 여행블로거기자단카페에
포스팅.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추후 3개이상의 또다른 후기 추가 포스팅)
@ 팸투어를 처음 신청하시는 회원은 여행자보험 가입을 위해 주소 및
주민번호를 카페지기에게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카페지기 : 강경원(마패) faron@hanmail.net 010-5482-1325
@ 신청게시판 : 여행블로거 기자단 카페 : http://cafe.daum.net/tourbloger
@ 포스팅 또는 스크랩용 자료
다음 : http://blog.daum.net/tourcodi/8126987
네이버: http://blog.naver.com/faron/100103258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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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광역시 팸투어 일정
❍ 코스 : 한국선교의 역사, 월미도유람선과 차이나타운 야경이 있는 인천여행
시 간 |
내 용 |
비 고 |
08:40 |
서울역 14번 출구 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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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
이동 (서울 → 인천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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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11:00 |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관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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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12:00 |
답동성당, 내동교회, 100주년기념탑 |
문화관광해설사 동반해설 |
12:00~14:00 |
월미도문화의 거리, 자유관람 및 중식 |
|
14:00~15:30 |
월미도유람선 |
유람선 (90분) 가이드 동반 |
15:30~16:30 |
한국이민사박물관 관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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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18:00 |
월미산 트래킹(월미전통정원 관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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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20:00 |
차이나타운 야경관람 및 석식 |
중화요리 |
20:00~21:00 |
이동 (인천 → 서울) 및 해산 |
|
@ 본일정은 진행상의 사유로 변경 취소될수 있습니다.
1. 수도국산 박물관
이 주변 일대가 매립되어 바다가 땅으로 변하고 공장이 지어지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는 이 자그마 한 언덕은 바닷가의 조용
한 소나무 숲이었다.
송림산은 산언덕 에 소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송현(松峴, 솔 고개)동, 송림(松林, 소나무 숲)동의 지명도 여기에서 비롯
되었다. 소나무를 베어내고 언덕에 정착하여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달동네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송림산이 수도국산으로 산이름이 바뀌게 된 데에는 근대 개항 기 인천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인천은 본래 우물이 적을 뿐 아
니라 수질 또한 나빠서 개항 이후 증가한 인구와 선박으로 물 확 보가 큰 고민이었다. 일제 통감부의 강압에 의해 한국정부는
1906년 탁지부(度支部)에 수도국(水道局)을 신설하고 인천과 노 량진을 잇는 상수도 공사에 착수하였다.
‘수도국산’이라는 명칭 은 이 곳에 수돗물을 담아두는 배수지(配水池)를 설치하면서 생겼다.
1908년에 제작된 송현배수지 제수변실은 원통형 콘크리트 구조로서 제수벨 브(배수관의 단수, 유압조절)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1905년 일본인이 서울 과 인천 사이의 상수도 건설계획을 추진하여 경인수도 설계를 완성했다. 이 설계도에 의하면 수원지
(水源池)는 한강 연안의 노량진 일대이고 급수지역은 서울, 용산, 인천지역이었다. 이에 따라 송현배수지는 1906년 11월에 착공
하여 1908년 준공되었으며 1910년 10월에 노량진 수원지 정수시설 을 준공해 노량진~인천 사이에 32.62㎞의 수도관을 부설하고
같은 해 12월 10 일부터 급수를 시작했다.
송현배수지는 부지면적 36,780㎡이고 5,000㎥ 저수조 3개를 갖추고 있으며 현재 이곳에서 급수받는 지역은 동구 일원과 중 구 일부
지역이고 저수능력은 20,000톤으로 준공 당시와 비슷하다.
◦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은 일본인에게 상권을 박탈당하고 중국인에게는 일자리를 잃고 인천 동구 송현동, 송림동과 같은 신설 마을로
찾아 들었다.
비탈진 소나무숲은 가난한 사람들의 보금자리로 변모하였다. 이어 한국전쟁(6.25)으로 고향
을 잃은 피난민들이 대거 몰려들었으며, 1960-70년대에는 산업화와 함께 전라, 충청지역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들었다. 산꼭대기까지 점차 작은 집들이 들어차면서 마침내 181,500㎡(5
만5천여평) 규모의 수도국산 비탈에 3천여 가구가 모둠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수도국산은 인
천의 전형적인 달동네가 되었다.
에 도 심에서 쫓겨난 판자촌 주민 들 은 정부가 정한 지역에 임시 천막을 치고 살면서 방 에 누우면 밤하늘의 달과 별이 보인다고 해서
생겨났다.
‘달동네’라는 용어가 널리 쓰인 것은 1980년 TV 일일연속극 <달동네> 방영 이후이다. 어려운 처지에서 보듬고 살아가는 달동네 사람들
의 애환을 그린 이 연속극이 큰 인기를 누리면서 이후 ‘달동네’는 불량노 후주택이 모여 있는 산동네의 대명사가 되었다.
달동네와 같은 ‘도시 저소득층의 집단 밀집 주거지’의 시초는 일제 강점기 ‘토막민촌’이라고 할 수 있다. 토막민촌은 일제의 수탈을 피해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올라온 이들이 주인 없는 산비탈이나 개천가에 허가 받지 않고 지은 것이다.
달동네도 그 중 한 형태인데, 일제의 식민정책, 8.15해방, 한국전쟁(6.25) 그리고 1960년대 경제개발 과정에서 인구가 급격하게 집중되
고 주택이 부족하게 되자 빈민계층이 한 곳에 모여 살면서 발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달동네 주민들은 국가 소유의 땅을 무단 점거하고,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자주 철거되거나 집단 이주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도시
내에서 일자리를 얻고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도시를 떠날 수 없었다. 따라서 쫓겨나면 다시 도시의 다른 곳에서 무허가 집을 만드는 악
순환의 고리를 형성하였다.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전반1970년대 후반목조흙벽
초가지붕 / 루핑지붕목조흙벽
기와지붕 / 슬레이트지붕목조흙벽
기와지붕 / 슬레이트지붕시멘트블럭
기와지붕/슬레이트지붕연와조(붉은 벽돌)
달동네는 산비탈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집들이 자리하면서 이루어졌다. 좁고 비탈진 곳에 집을 짓다 보니 공간의 여유가 없는 반면 많은 기능
을 담게 되었다. 더 나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궁리 하면서 자기만의 공간을 창조해 냈다. 따라서 전면적인 개축보다 낡고 오래된
부분을 개보수하거나 자투리를 활용하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평면은 지형에 따라 ㅡ자, ㄱ자형을 기본으로 하는데, 증축과 개축을 하면서 조금씩 바뀐다. 수도국산 달동네 가옥 형식은 1960년대 후반까
지는 목조 흙벽에 초가지붕 혹은 루핑(유지)지붕이 일반 적이었지 만 1970년대 전반 새마을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지붕은 기와지붕이나 슬레
이트지붕으로 바뀌 었다.
인천 동구 송현동 『건축물대장』의 신축가옥의 형태
2. 답동성당, 내동교회, 100주년 기념탑
◦ 뾰족 돔 얹힌 아름다운 외관!
◦ 프랑스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 빌렘신부가 초대 본당 신부로 부임하면서 답동 언덕에 설립되었다.
◦ 1890년 7월 성당 건축 정초식을 갖고 1894년 착공해서 1897년에 고딕식의 단층건물로 세워졌다.
◦ 현재 모양의 답동성당은 1933년에 옛 성당건물을 보존하면서 외벽을 벽돌로 쌓아올려 1937년에 완공한 성전으로 로마네스크양식을 띠고있다.
◦ 중앙의 탑상부와 양측의 소탑의 상부에 뾰족돔을 얹어 아름다운 외관을 형성하고 있다.
◦
사 적 : 제287호
규모 및 구조 : 건평307.2평,단층 벽돌조
시 대 : 1933년 착공, 1937년 준공
소 재 지 : 인천광역시 중구 답동 3의 1
지 정 일 : 1981. 9. 25
지정면적 : 8,262.5㎡(2,499.4평)
인천내동성공회성당
◦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가 한국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1890년 9월부터이다.
◦ 고르페 주교는 인천에 한국 최초의 성공회 교회인 성미가엘교회를 설립하고 선교활동에 들어갔다.
◦ 이것이 성공회 인천내동교회이다.
◦ 내동교회는 이듬해 10월 교회 이웃에 인천 최초의 서구식 병원인 성(聖) 누가 병원을 세웠다.
◦ 당초 교회 건물은 1891년 9월 30일 준공하였으나 한국전쟁 때에 소실되었고 현재 건물은 1956년 6월 23일 준공되었다.
◦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51호
위 치 : 중구 내동 3번지【현 인천성공회】
시 대 : 1956년
지 정 일 : 2002. 12. 23
3.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위 치 :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 3가 2-2번지 (자유공원)
건립일 : 1982. 12. 14
◦ 본 기념탑은 1882. 5. 22 제물포 화도진 언덕에서 조선국 전권대신 신헌과 미국측 대표 슈벨트 제독 간에 체결된 전문 14조의 한미
수교 통상 조약의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고 향후 한.미 양국간의 상호 신뢰 및 우호 협력 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기위해 건립
하였다. 탑의 외형은 돛을 형상화 시킨 형태이며 인간, 자연, 평화, 자유를 8개탑으로 구성함으로써 양국이 상견례하는 뜻과 결속을
나타 내고 있다. 탑신 높이는 20M, 18.5M, 17M, 15.5M 각2기이며 내부는 철, 외부는 동으로 되어 있으며 '움직임 그 100년'이란 기념
조각이 새겨져 있어 한ㆍ미 양국간의 영원한 우애와 유대를 상징하고 있다.
4. 한국이민사박물관
한국이민사박물관은 2003년 미주 이민 100주년을 맞아 우리 선조들의 해외에서의 개척자적인 삶을 기리고 그 발자취를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인천광역시 시민들과 해외동포들이 함께 뜻을 모아서 건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사박물관입니다.
우리나라 첫 공식 이민의 출발지였던 인천에 한국 최초의 이민사 박물관을 건립함으로써 100여년의 한인 이민역사를 체계화 할 수
있는 기반이 비로써 마련되었습니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앞으로 국내ㆍ외 동포사회의 네트워크 형성을 통한 과거 지향이 아닌
700만 동포들의 삶과 애환이 살아 숨쉬는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장소입니다.
○ 전시실 안내
- 1층상설 전시실 : 미지의 세계로
이민의 출발지였던 개항 당시의 인천을 소개하고, 우리나라 첫 공식 이민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국내정세 및 하와이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1902년 첫 공식이민이 이루어질 당시의 황성신문 기사들과 이민 모집 광고, 이민을 담당한 유민원에서 발행한 최초의 공
식적인 여권인 집조 등을 통해 개항기 시대상과 생활상도 만나 볼 수 있다. 또한 이민자들을 싣고 하와이로 떠난 첫 선박인 갤릭호
모형을 통해 당시 이민자들의 길고 험난했던 여정도 생생히 체험해 볼 수 있다.
- 2층상설 전시실 : 극복과 정착
하와이에 정착한 한인들의 애환과 개척자로서 미국 전역에 뿌리를 내린 발자취 등을 담은 사진자료 및 유물을 볼 수 있다. 바닥
면에는 총 64회에 걸쳐 이민자들을 태우고 하와이로 간 선박명과 승선날짜, 이민자 수를 전시해 놓았다. 또한 사탕수수농장 한인
노동자들이 걸었던 반고라는 신분증과 그들의 고된 노동생활을 담은 영상도 초기 한인 이민자의 삶을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등도
전시되어 있다. 하와이 한인학교를 연출해 놓은 교실에서는 그 당시 사용 했던 교과서를 관람객이 직접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념사진 촬영도 할 수 있는 포토존으로 운영하고 있다.
- 3층상설 전시실 : 또 다른 삶과 구국염원
중남미로 떠난 한인들의 또 다른 삶과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몸을 바쳤던 선열의 활약상을 볼 수 있다. 과장ㆍ허위광고에 속아
멕시코 에네켄 농장으로 보내졌던 이민자들은 가혹한 노동환경 및 쿠바, 파라과이 등 기타 남미 국가로 떠난 이민자들의 삶을
만나 볼 수 있다. 3ㆍ1운동이 국내에서 발발하자 해외 한인 단체를 중심으로 조국독립을 위한 외교 및 선전활동과 독립자금 모금
운동 등도 살펴볼 수 있다. 제 3, 4 전시실이 연결복도에는 왼쪽 벽면에 갤릭호를 통해 총 64회에 걸쳐 태평양을 건너간 이민자
7,415명의 이름 “코리안 디아스포라”라는 주제아래 동판으로 새겨져 있다.
- 4층상설 전시실 : 세계속의 대한인
전 세계 각국으로 진출하여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7백만 해외동포의 근황과 염원을 살펴볼 수 있다. 동그란 전시실 안 바닥에는
세계지도와 150개국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수가 나라별로 표시되어 있다. 또한 중앙에는 그중 한인 이민자가 가장 많은 13개국
현황과 우리 동포수가 패널에 표시되어 있다. 그 밖에 한인이민사를 재조명하고 한인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각종 해외이민
기념사업과 축제, 문화활동에 대해서도 살펴보실 수 있다.
- 기획전시실 기획전시홀
특별전시, 및 기획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향후 해외 이민자들이 기증한 유물을 교체 전시하는 공간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 영상실
120“ DLP프로젝트 영상시설을 갖추고 한국 이민의 한 세기를 담은 다큐멘타리를 상영한다. 학급 및 단체 관람시 예약제로 운영된다.
5. 월미산(월미공원)
○ 소개
한국전쟁 때 함포사격으로 훼손되었다 세월이라는 처방전으로 치료되어 제 모습을 찾은 월미산이 반세기만에 시민의 품에 안겼다.
자유공원 9배 크기에 달하는 월미산의 숲 속에는 방울꽃, 금강초롱, 자주달개비꽃 등 259종에 이르는 식물이 분포돼 있다. 월미산
등반로는 2곳이 있는데 하나는 전통공원, 다른 하나는 월미도 만남의 광장으로 이어진다. 해발 108m의 정상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정도로 바닷바람과 숲의 향긋함을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산책하기 좋다. 산 주위를 빙 도는 순환로와 정상을 향하는 오르막길로
이루어진 월미산에 오르면 드넓게 펼쳐진 인천항과 영종․용유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 포인트는 예포광장과 23m 높이의 월미전망대.
특히 유리로 만든 월미전망대는 야간에 조명을 비춰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 산행안내
월미산을 오르는 길은 꼭 남산을 오르는 길처럼 다소곳한 오솔길이다. 잘 닦여진 그 길은 경사도 그리 급하지 않아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정상을 향해 올라갈수록 월미도 문화의 거리와 놀이동산, 회집들은 작아진다.
이윽고 정상. 사방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가깝게는 인천항으로 들고나는 여객선과 화물을 가득 실은 화물선들이 보이고 멀리는 2001년
3월에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이 위치한 영종도가 보인다. 만약 날씨가 좋은 날이라면 북녘 땅도 보일 듯하다.
월미산의 크기는 자유공원의 아홉 배. 그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던 탓에 때묻지 않은 처녀림을 간직하고 있다. 정상까지 걸어
서 15분이면 족하다. 그곳에 인천의 진면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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