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인천시

전형적인 달동네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곳 - 달동네박물관

cowboy 2010. 4. 20. 10:30

 

수도국산  동네 박물관

그리운이름 수도국산 달동네

지금도 문 열고 골목길을 나서면 구수한 밥 짓는 냄새와 함께

그리운 이가 나를 맞이해 줄것만 같습니다...

그러나...그 달동네의 옛골목은 지금...사라지고 없습니다

 

 

 

 

 

수도국산(水道局山)이란?

수도국산의 원래 이름은 만수산(萬壽山) 또는 송림산(松林山)이다.이 주변 일대가 매립되어 바다가 땅으로 변하고

공장이 지어지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는 이 자그마 한 언덕은 바닷가의 조용한 소나무 숲이었다.송림산은 산언

덕 에 소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송현(松峴, 솔고개)동, 송림(松林, 소나무숲)동의 지명도 여기에서 비롯되었

다. 소나무를 베어내고 언덕에 정착하여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달동네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송림산이 수도국산으로 산이름이 바뀌게 된 데에는 근대개항기 인천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인천은 본래 우물이 적

을 뿐 아니라 수질 또한 나빠서 개항 이후 증가한 인구와 선박으로 물 확보가 큰 고민이었다. 일제 통감부의 강압에

의해 한국정부는 1906년 탁지부(度支部)에 수도국(水道局)을 신설하고 인천과 노 량진을 잇는 상수도 공사에 착수

하였다. ‘수도국산’이라는 명칭 은 이 곳에 수돗물을 담아두는 배수지(配水池)를 설치하면서 생겼다.

 

 

 

이곳에는 수도국산의 옛 모습과 실존인물을  복원하여 전시 하였다.

부모님 세대에게는 정겨운 시절의 추억속으로의 여행을,

자식세대에게는, 고단하지만 열심히 살았던 60,70 시대의 삶의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다.

 

 

 

 

 

 

 

 

 

동네는 높은 산자락에 위치해 달이 잘 보인다는 의 미로, 유래는 ‘달나라 천막촌’에서 비롯되었다. 1950년대 말-1960

년대 중반 사이에 도 심에서 쫓겨난 판자촌 주민 들 은 정부가 정한 지역에 임시 천막을 치고 살면서 방 에 누우면 밤하늘

의 달과 별이 보인다고 해서 생겨났다.‘달동네’라는 용어가 널리 쓰인 것은 1980년 TV 일일연속극 <달동네> 방영 이후이다

어려운 처지에서 보듬고 살아가는 달동네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이 연속극이 큰 인기를 누리면서 이후 ‘달동네’는 불량노후

주택이 모여 있는 산동네의 대명사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은 일본인에게상권을 박탈당하고 중국인에게는 일자리를 잃고 인천 동구 송현동, 송림동과 같은

신설 마을로 찾아 들었다. 비탈진 소나무숲은 가난한 사람들의 보금자리로 변모하였다. 이어 한국전쟁(6.25)으로 고향
을 잃은 피난민들이 대거 몰려들었으며, 1960-70년대에는 산업화와 함께 전라, 충청지역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

시로 모여들었다. 산꼭대기까지 점차 작은 집들이 들어차면서 마침내 181,500㎡(5만5천여평) 규모의 수도국산 비탈에

3천여 가구가 모둠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수도국산은 인천의 전형적인 달동네가 되었다.

 

 

 

 

 

 

 옛날 동네 골목길에 덕지덕지 붙여졌던 영화포스터와 반공 표어 및 광고물들...

 

 

인천의 성냥공장에서 하청을 얻어다 성냥갑 접기나 성냥갑에 성냥을 담는

일을 온가족이 들러모여 앉아서 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 해 놓았다..

 

 

 

옛날 이집에 실제로 살던 사람들의 사진이며 집기품들을 거의 사실대로 보존해 놓은 것이 이채롭다..

 

 

 

옛날 골목어귀에서 내려다 보이는 동네를 옛사진을 통해 그대로 느낄수 있다..

 

 

 

 

옛날 고달프고 가난하던 우리의 부모님 세대의 정서가 깊이 담겨있는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을 시간내어

한번쯤 아이들과 함께 돌아보는것도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들과의 정서를 좁힐수 있는 계기가 될성 싶다..

 

수도국산 동네 박물관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동 163번지

032-770-6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