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높고 들녘엔 황금물결이 일렁이며, 각종 나무들은 어느새 온갖 화려한 옷으로 치장을 하고 나그네의 마음을 유혹하는 이가을!~ 어디론가 떠나지 않고는 좀이 쑤실것 같아 카메라 가방 둘러메고 오늘은 제천쪽을 향해 떠나본다.
제천시를 관광하기 위해 처음으로 찾은곳은 " 첩첩산중 계곡이 깊어 마치 배 밑바닥 같다고 해서 주론(舟論),또는 배론이라 불리는 이곳! 지금의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 652번지 배론성지 이다.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 이며,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으로 1801년 신유 박해때는 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 배론산골로 숨어들어 옹기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한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예쁜 단풍나무 가로수 길이 쭈~욱 뻗어 있는 네거리 쯤에 성지 안내를 알리는 입간판이 방문객을 맞는다. 우측으로 돌아 성요셉 성당부터 보기로 한다.
▽
배론성지
전경이다.
연못이있고 주변에 아름다운 단풍나무가
색색갈의
파스텔톤
의 옷을
갈아입고
방문객을
인도한다
한국 최초의 신학교
1831년에 설정된 조선 교구는 파리 외방 전교회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가장 큰 목표는 조선인 사제를 양성하여 이들에 의해 교회가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데 있었다. 그리하여 1836년 먼저 3명의 신학생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다.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배론 신학교(1855-1866년, 주보성인 성요셉) 설립자.당시 조선교구 교구장 직무대행 메스트로 신부는 1855년에 배론에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메스트로 신부는 1808년 프랑스 앙트르몽에서 태어나 1832년 사제로 서품되었고 1839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했다.
이듬해 마카오에 가서 김대건과 최양업을 가르치기도 했다. 조선에 입국하기 위하여 10년간의 모험 끝에 1852년 8월17일 중국 배를 타고 서해안 고군산도에 상륙하여 서울로 올라왔다.
1853년 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가 병사하자 1856년 3월27일 4대 교구장 베르뇌주교가 도착 할 때까지 교구장 직무를 대행하였다. 메스트로 신부는 1857년 12월30일 과로로 쓰러져 선종 할때까지 배론 신학교 설립 외에도 조선에서 처음으로 고아원 사업을 시작하기도 하는 등 착하고 순한 성격으로 최양업 신부와 많은 조선의 신자들로부터 각별한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1861년 10월 교구장 베르뇌 주교님은 신학교를 성요셉 신학교라고 하였다. -(배론성지홈피에서 발췌)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 (2003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정확히 고증하기 어려우나 1930년 정규하 신부를 비롯한 배론 교우들이 함께 찍은 사진과 1948년 9월 27일 주재용 신부가 작성한 도면 등을 참고로 현 위치에 건축된 성 요셉 배론 신학교는 현재 충북 지방문화제 제 118호로 지정되어있다.
신학교는 초가집(전형적인 서민이 사는 초가 3칸 : 방2 부엌1)이었으며 조선 생활 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선교사들에게는 매우 협소하고 불편 했다. 특히 집 앞을 지나가는 외교인들에게 발각될까 두려워 큰소리로 책을 읽을 수도 없었다. 방 2개중 1개는 신학생들의 공부방으로 다른 하나는 신부님의 거처방으로 쓰였다.
사진,기사,출처-(천주교원주교구배론성당 홈피에서 발췌)
▽ 프티니꼴라 신부 -1862년 교수로 임명되어 1866년 3월까지 5년간 재직
▽ 푸르티에 신부-1856년 8월 신학교교장으로 임명되어 1866년 3월까지 재직
순교자 -황사영
황사영은 처삼촌 정약종이 들려준 천주학에 매료되어 1790년에 이승훈에게서 천주교 서적을 얻어 보았고 천주교 신앙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한 후 알렉시오(Alexius) 라는 세례명으로 영세 입교한다. △ 기사,사진(천주교 원주교구배론성지 홈피에서 발췌) |
▽ 황사영이 토굴에서 당시의 박해 상황과 천주교도의 구원을 요청하는 백서를 집필 히였는데, 그원본은 현재 바티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토굴은 1988년 서울대 이원순 교수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사진설명:(上左)-토굴설명표지판, (上右)-황사영이 백서를 집필하던 토굴, (下左)-백서전문. (下右)-백서일부(확대사진)
▽
▽ 성모마리아 를 모시며 기도하는곳이다
▽옹기가마굴
▽ 황사영 순교 현양탑
▽ 베론본당으로 성지에서 가장오래된 한옥누각 성당이다
무명순교자지묘!-무명의 순교자를 기리는 묘지
배론성지의 곳곳에는 크고 작은 단풍나무와 정원수가 방문객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배론성지의 아름다운 단풍들...
▽ 조각공원이란 표지석이 있지만 사실 최양업신부의 묘지이며 묘지를 둘러싼 벽에는신부의 일대기가 조각되어있어
▽ 최양업신부의 "바다의 별" 대성당과 소성당
최양업신부 기념성당(대성당, 소성당)의 의미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성덕을 기리며 시복시성을 기원하기 위해 건립된 이 성당은 배 모양으로 설계 시공되었다. 성당의 의미는 첫째, 배론이라는 지명을 조형화한 것인데, 이 곳은 골짜기의 모양이 배 밑바닥 처럼 생겼다고 하여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둘째, 노아의 방주가 그러했듯이 교부들은 초기부터 교회를 구원의 배로 이해하고 표현 하였다. 사나운 세상의 풍랑 속에서 안전하게 하느님 나라를 향해 항해하는 배를 지음으로서 2000년기의 세기말적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안정과 평화를 주고자 하는 뜻과 2000년 대희년은 물론 제삼천년기를 향한 희망의 뜻을 담았다.
셋째, 최양업신부가 입국하기 위해 몇 차례 승선했던 그 배를 상기하여 그분이 지니셨던 불굴의 선교의지를 본받고자 하였다.
▽ 대성당의 내부사진이다. 건축에 대해선 잘은 모르지만 멋진 건축물 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성당은 때마침 영결미사를 보고있어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 아래는 배론성지 홈피에서 발췌한 사진이다.
소성당 내부사진
▽ 이곳은 원형 미로를 만들어 놓았다.
예수님 십자가 조각물!
비록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공기맑고 아름다운 배론성지에 와서 의미있는 공부와 구경을 했다. 성지를 나오면서 아쉬움에 한번더 돌아보게 한다.
배론성지 가는길
배론성지 :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 652-1
전화 : 043-651-4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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