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충청도

360년세월의 "ㅁ"자형 목조기와집 정순왕후 생가

cowboy 2010. 5. 30. 09:00

 서산을 여행 하다  음암면 유계리에 있는 아주 오래된듯한 고택이 있어 들려보기로 한다..

대문앞에 아담한 정원이있는  한다리 마을 야산아래에 동향하고있는 ㅁ 자형 목조기와집,가까이 다가가서

간판을 보니, 이집이 바로 조선 21대 임금 영조대왕의 계비 정순왕후가 태어난 생가이다.

 

이 가옥은 정순왕후의 5대조이며 승지, 충청감사, 황해도 관찰사 등을 지낸 김홍욱(金弘郁)이

효종임금의 하사금으로 1650년경 지은 것이라 한다. 경주 김씨 학주공파 시조인 김홍욱은 추사 김정희의 7대조

이기도 하다. 그는 효종임금과 매우 친근하게 지냈으며 김홍욱이 늙은 부친에 대한 효심이

극진한 것을 알고 하사하였다고 한다.

원래 이집은 조선 효종 때 예조참의를 지낸 김홍욱(金弘郁)의 집이었으며 김홍욱의

4대손이자 정순왕후의 아버지 김한구에게 이어졌고, 정순왕후(1745~1805)가 그의 맏딸로 이 집에서

태어났으며, 왕비로 책봉되어 궁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

 건물은 자집 목조 기와집으로,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이며.

안채는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3칸을 덧붙여 자형을 이루고 있고, 사랑채는 온돌방 2칸, 각각 1칸씩의 곳간과

부엌 및 광으로 구성되었고 마당을 향한 곳에 툇마루를 두었으며 광 옆으로

사랑채와 안채로 통하는 중문이 나 있다.

 왕비가 태어나던 날 '집 주변에 영롱한 서기(瑞氣)가 맴돌고,

보지 못하던 아름다운 새들이 이 집으로 날아 들어와 마을 주민들이 장차 큰 인물이

될 징조라며 기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진다.

현재는 그의 후손이며, 전 서산시장을 지냈던분이 실제 거주하고 있다.

 정순왕후는,영조의 정비 정성왕후(貞聖王后) 서씨(徐氏)가 죽은 뒤,

1759년(영조 35)에 왕비에 책봉되었다. 1772년 예순(睿順)·명선(明宣) 등의 존호를 받았으며,

소생은 없었고, 정빈 이씨(李氏)의 소생인 사도세자와 사이가 나빴다.

 

나경언(羅景彦)이 아버지 한구의 사주를 받아 세자의 비행을 상소하자, 사도세자를 서인으로

폐위시키고 뒤주 속에 가두어 굶어죽게 하였다.

 

그후로도 사도세자를 동정하는 시파(時派)를 미워하고, 그 반대파인 벽파(僻派)를 옹호했다.

정조가 죽고 나이어린 순조가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하면서 공서파(攻西派)와 결탁하여 천주교 금압령을 내려

신서파(信西派)를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능은 원릉(元陵)이며 시호는 정순이다.

 

정순왕후가 60세 되던해, 순조 4년(1804)에 대정을 환정하고 섭정에서 물러났으며,

다음해에 61세의 나이로 서거한 여걸중의 한사람이었다.

안채의 맛배지붕 끝에 민화가 세도가 임을 증명 이라도 하듯...

 

 

 

 정순왕후 생가 바로앞의 포도밭이다.. 포도나무아래가 온통 민들레 밭이다.

일부러 심어놓은 것인지, 민들레 꽃 홀씨가 흐드러지게 예쁘게 피어있는것이 장관이라서

찍어본 것인데..실제로 넓고 광활한 포도밭이 현재는 민들레 밭이다.

 

 

 정순왕후 생가까지 돌아보고나니 어느덧 하루해는

서산에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영조대왕비 정순왕후가 1745년 태어난 집

 

소재지-충남 서산시 음암면 유계2리 464

건축유형- 주거

창건시기 -1650년경(조선효종조)

현황조성시기- 조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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