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충청도

안평대군 꿈속 무릉도원을 설명듣고 그린 안견의 "몽유도원도"

cowboy 2010. 6. 2. 09:00

 

안견기념관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 산 59번지의 언덕위에는 콘크리트로 건물의 하얀색 웅장한 

팔작지붕 기와집 으로된 안견기념관이 있다.

 

서산 아라메길 걷기 여행을 마치고 시간이 조금남아 들러보게 된곳이다.

 안견기념관을 올라가다보니, 기념관 앞에 세워진 이종린의 문학기념비가 서있다.
이종린은 대한제국 말기에 성균관박사, 일제강점기에 언론인·소설가·종교인으로 활동하였고,

광복후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196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된 인물이다.


아호를 딴 <봉산집(鳳山集)>과 <문장체법(文章體法)> 외에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두만강> <홍루지> <가련홍> 등의 소설, 한시 200여 수와 시조 3수를 남겼다..

 

이종린 기념비가 왜 이곳에 서있는지는..

안견(安堅)은 누구인가?

안견의 본관은 지곡(池谷). 자는 가도(可度)·득수(得守), 호는 현동자(玄洞子)·주경(朱耕).

1400년경을 전후하여 태어나 세종대에 활동하고 세조 연간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화원으로 종6품 선화(善畵)를 거쳐 정4품 호군(護軍)에 올랐다.

기념관으로 올라가니 오른쪽 측면에 정문이 나있다.  안견은

 1442년 안평대군(安平大君) 초상을 비롯하여 〈이사마산수도 李司馬山水圖〉(1443)·〈팔준도 八駿圖〉(1446),

〈몽유도원도 夢遊桃源圖〉(1447)·〈대소가의장도 大小駕儀仗圖〉(1448)·〈동궁의장도 東宮儀仗圖〉

(1448) 등을 그려 세종대 화단의 제일인자로 활약했다고 전해진다.

사람됨이 총민하고 정박(精博)했으며, 안평대군의 후원으로

옛 그림들을 많이 보면서 그 요체와 여러 대가들의 좋은 점을 취하고 절충해 자신의 화풍을 이룩했으며,

인물·화훼·매죽(梅竹)·노안(蘆雁)·누각(樓閣)·경작(耕作)·말[馬]·해청(海靑) 등을 잘 그렸고,

특히 산수화를 잘 그려 당시 필적할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사진은, 적벽도(赤壁圖)의 사본 으로 (15세기)작이며,

작자는 미상으로, 비단 바탕에 채색, 161.5×102.3cm, 이며, 진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현재〈몽유도원도〉만이 확실한 진작으로 전하고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사시팔경도 四時八景圖〉등은 전칭작으로 알려져 있다.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1447년작, 비단 바탕에 수묵담채로 

세로 38.7cm, 가로 106.5cm.이며,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중앙도서관에 소장.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

무릉도원을 방문하는 꿈을 꾸고 그 내용을 안견에게 설명한 후 그리게 한 것이다.

 

그림과 함께 안평대군의 표제와 발문을 비롯해 신숙주(申叔舟)·정인지(鄭麟趾)·박팽년(朴彭年)·

성삼문(成三問) 등 당대 최고 문사들의 제찬을 포함해서 모두 23편의 자필 찬시가 곁들여 있다. 그림은

1447년 음력 4월 20일에 그리기 시작하여 3일 만인 23일 완성되었다.

 

 〈사시팔경도〉

가운데 만춘, 안견이 그렸다고 전칭되는 작품이다

비단 바탕에 그린 담채화(15세기), 35.2×28.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처:다음백과)

 

 

소상팔경도<瀟相八景圖>

중국 후난 성[湖南省]양쯔 강[揚子江]남쪽의 샤오수이 강[瀟水], 샹장 강[湘江]이

합류하는 지점의 아름다운 경치를 8폭에 나누어 그린 그림이다.

내가 보기엔  몽유도원도 외엔 딱히 안견의 작품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부족한 상태인것 같아보인다..

<자료참조:다음백과>

 

 

안견기념관 

주소 충남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 산59-1
전화 041-660-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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