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경상도

영남 알프스에 둘러쌓인 사명대사의 호국성지 -밀양 표충사

cowboy 2011. 9. 16. 06:30

 밀양-표충사

여행을 좋아하고 즐겨 다니지만  밀양여행은  이번이 처음인거 같다.  얼마전 까지 산악활동으로

 재약산, 가지산, 운문산, 신불산, 간월산, 취서산 등 소위 영남 알프스를 두루 종주하느라. 2박3일

동안 밀양 땅을 통과한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이번에 밀양시가 주최하고 (주) 하나투어 국내사업

본부 웹투어(주) 가 주관한 밀양 팸투어에 초청받아 밀양에 오게된 것이다. 밀양여행의 첫 방문지

로 표충사를 찾았다.

표충사는 1300 여년전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세분의 국사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선사)

가 제도,교화를 한곳이다. 서산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73세 노구로 1500여 승병을 모집하여 명나

군대와 합세, 한양수복에 공을 세운뒤  사명대사 에게 승병을 맡기묘향산 원적암으로 들어가

여생을 보냈다.


사명대사는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승병을 모집, 서산대사의 휘하로 들어가  이듬해 승군

도총섭(僧軍都摠攝)이 되어 명(明)나라 군사와 협력, 평양을 수복하고 도원수 권율(權慄)과 의령에서

 왜군을 격파, 전공을 세우고 당상관(堂上官) 의 위계를 받았으며, 1604년인 선조 37년엔 국왕의 친서

를 휴대하고, 일본에 건너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 를 만나 강화를  맺고  조선인 포로 3,500명

 인솔하여 귀국했으며 ,선조가 죽은 뒤 해인사 (海印寺) 에 머물다가 그 곳에서 입적하였다.

 

또 한분의 국사인 기허선사는 계룡산 갑사에 출가하여 서산대사의 제자로 공주(公州) 청련암 에서

수도 하였으며 선장 (禪杖)으로 무예를 익혔다.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00명의

 승병을 모아 의병장 조헌(趙憲)과 함께 청주(淸州)를 수복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승병을 일으켜
 전국의 승병들이 궐기하는 도화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전라도로 향하는 왜군을 공격하기 위해 금산

(錦山) 에서 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격전 끝에 조헌 등 700의사(義士)와 함께  순국하였다.

 

표충사의 정문인 수충루 는 밀양시 교동에 소재한 "밀양향교의 정문인 풍화루"와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

소재한 "예림서원의 정문인 독서루" 와 더불어 다른 사찰 에서는 보기 드문 서원 정문 형태의 누각이다.

이는 表忠祠를 밀양시 무안면에서 옮겨오면서 사명대사의 위패를 모시고 서산대사와 기허대사의 위패를 같

이 모신 표충서원이 表忠寺 내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표충사의 사당(祠堂) 영역과 사원(寺院) 영역을 구분하고 있는 사천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원래는 대광전 맞은편 우화루 앞쪽에 사천왕문이 있었으나,  최근 사당 영역을 새롭게 조성하고 절의 진입로를 옮기

면서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내부에는 근래에 조성한 목조사천왕상과 함께 현대의 불모(佛母) 석정(石鼎)

스님이 조성한 사천왕탱이 봉안되어 있다.

표충사 유물관
표충사는 임진왜란때 승병장으로 큰 활약을 펼쳤던 사명대사의 충정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절이다. 따라서, 이곳에는

사명대사와 관련된 16건 79점의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그중에는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4년(선조37년)에 사명

대사가 강화사절로 일본에 갈 때 그 호송 문제와  임진왜란때 잡혀간 조선포로의 송환문제를 다룬문서,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비명을  새긴목판, 서산대사의 사적을 새긴 목판, 다라니경목판, 금강반야바라밀경, 불설아미타경 등과

같은 불경등이 포함되어있다.   특히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와 관련된 자료들은 임진왜란 당시 승병의 활약과 그 이후

강화사절로서 사명당의 역할을 살필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표충사 3층석탑

표충사  대홍원전 (大弘願殿) 앞에 세워진 3층석탑 이다.   탑 앞에는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석등이 있으나 
이 곳은 탑과 석등이 놓였던 원래의 위치가 아닌 듯하다. 표충사의 원래 이름은 죽림사(竹林寺)인데 신라 흥덕왕 4년(829)

에 두번째로 크게 확장시켜 이름을 영정사(靈井寺)로 고쳤다고 전한다. 조선 헌종 5년(1839)에는 그때까지 밀양군 무안면

에 있었던 표충사(表忠祠)를 영정사로 옮기면서 절 이름도 표충사(表忠寺)로 개칭하였고, 가람배치도 큰 이동이 있었던 것

 

이니 아마 이 탑도 그 때에 옮겨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고 한다. 기단(基壇)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

으며, 각 면을 둘로 나누어 놓았다. 탑신부(塔身部)는 층마다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은 기단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형태로, 균형면에서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표면 모서리에는 매우 넓은 기둥이 새겨져 있고 다른 장

식은 없다. 2층 몸돌은 1층에 비하여 높이가 급격히 줄었으며 3층도 체감되어 있다. 또한 2·3층의 몸돌 모서리에도 기둥모양

 

이 새겨져 있으나 너비는 전체가 축소됨에 따라 좁아졌다. 지붕돌은 밑에 4단의 받침이 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었으며, 지

붕은 아름다운 곡선으로 흘러내리다가 네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치켜올려져 있다. 꼭대기에는 탑의 머리장식이 얹혀져 있으

나 정돈되지는 못하고, 그 위에 1m 가량의 끝이 뾰족한 쇠막대를 세웠다.  탑신부 1층의 몸돌이 지나치게 커다란 단점이 있

으나,  기단이 1단으로 구성된 신라석탑양식을 따른 아담한 탑이다. 탑의 머리장식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서 주목을 받

고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보물 제467호)

 

표충사의 큰 법당인 대광전 이다. 법당이란 진리로써 가득 채워져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 법당에는 모든 번뇌와 미혹을

밝혀서 불멸의 생명, 무한한 행복과 영원한 자유를 이룬 부처님이 계신다.  스스로 이기심과 탐욕과 어리석음을 불러 일으

켜서 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눈 멀게 하는 중생을 향해  무궁무진한 법문의 세계를 펼쳐 놓은곳이 바로 법당이다.

대광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깊이 신봉 되어온 삼존불을 봉안하고 있다. 삼존불은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아미

타불이며,  이들 부처님은 중생의 염원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에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깊이 신봉되어 왔다.
표충사의 대광전은 신라시대에 창건하였다고 하나, 화재나 병화(兵火)로 소실되어 중건, 중수 되었다. 현재의 전각은 조선

기에 중건한 정면 5칸, 측면 3칸, 외3포, 내3포의 다포식 팔작지붕이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131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광전옆에 나란히 자리잡은 팔상전은 1854년(철종 5년)에 당시 주지였던 환월선사(幻月禪師)가 창건하였으며, 
1926년 화재로 소실되어 1929년에 중창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위치는 현재 종무소가 있는 자리이고 지금의 위

치에는 표충서원이 있었으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일부 승려들이 사찰 내에 유교식 서원의 존재가 불가할 뿐 아

 

니라 대광전과 나란히 사당을 둔다는 것은 불경(不敬)하다는 지적이 있어 1971년에 자리를 맞바꾼 것이었다.

대광전과 마찬가지로 잘 다듬어진 장대석의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주심포식 팔작지붕 건물이며
내부에는 소조석가여래좌상만을 봉안되어 있다. 팔상전은 현재 경상남도문화재자료 141호로 지정되어 있다

 팔상전 안에는 이렇게 귀여운 토끼가 살고 있다.

 

 

 표충사에는 유독 베롱나무가 많은데 때마침 선홍색의 꽃이 만발해있어 너무 아름답다

 아주 오래된 베롱나무같아 보였는데 꽃과 함께 어우러진 자태가 너무

아름다워 진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것 같았다.

 

 

 

 

표충사 입구 오른쪽으로 다 쓰러져가는 작은 가람을 볼수 있는데...영사각 이라는 이 가람은 가람수호를 기원하는 외가람각

으로써 가람각은 죽은 자의 혼을 실은 영가가 경내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모셔지는 곳으로, 이곳에서 영가는 속세의 떼를벗

는 목욕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가람각은 다른 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종교적 건물로, 전남 순천 송광사에 있는

아주 작은 전각인 세월각(洗月閣)과  척주각(滌珠閣) 과 같은 용도의 건물이라고 한다.

 

표충사가는길

 

 

 

 

이렇게 밀양의 첫방문지를 둘러본후 점심을 먹고 한여름에도 얼음이 얼어있고

냉기가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는 얼음골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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