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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여행/진천여행]-천년의 세월을 머금고 꿈틀대는 지네 형상의 - 진천 농다리

cowboy 2012. 7. 20. 20:12

 

[충북여행/진천여행]-천년의 세월을 머금은 생거 진천의 농다리

 

인류 문명의 발상지가 물길을 따라 형성된 것처럼 사람이 살고 마을이 들어 앉은 곳에는 크고 작은 개천이 흐르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개천을 가로 지르며 징검다리나 통나무 다리가 놓이게 되고, 이렇듯 다리는 수 천년 동안 사람과 사람을,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면서 만남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통로의 역할을 하며 인류 문명발전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오랜 옛날에는  바위나 거대한 나무등을 있는 그대로 이용하여 폭이 좁은 하천이나 계곡등 을 통행 하였지만, 점차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 석재와 목재를 이용해 원하는 형태로 가공하여 도로와 함께 다리를 설치하게 되었고, 중세 시대에는 다리의 실용성과 미학적인 측면을 고려하기 시작 하였으며, 18세기의 시멘트와, 19세기엔 철강을 이용하게 되면서, 다리 건축역사는 급속한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고려초기에 놓여져 천년의 신비를 지니고 있으면서 거의 훼손되지 않을 정도로 축조방법에서 뛰어난 국내 유일의 돌다리로서 우리 선조들의 돌다리 축조술이 집약되어 있는 진천군 문백면 세곡천에 놓여져 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생거진천의 귀중한 문화유산  농다리 에 처음으로 다녀왔

 

 

구곡리의 농다리로 가는 입구에 농다리의 역사와 이해를 돕기위해 농다리 전시관이 세워져 있어 자세한 설명과 정보를 듣고, 봐야 이해가 빠를것 같기에, 그곳에 들려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전시관 내부를 둘러봤다

 

 

천년의 풍상에도 끄덕없이 놓여있는 자랑스러운 조상의 유물 농다리는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첫단계로 다리가 튼튼하게 지탱할 수 있도록 튼튼한 기초석 쌓기이다.  가리천과 태산천이 합류한 물줄기가 문백면 구곡리를 흐르게 되는 세금천은 수량이 많고 수심이 깊어 홍수가 나면 거센 물줄기가 다리위를 세차게 흘러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잠수되기 때문에 하천 바닥에 튼튼한 기초석을 쌓은것이다.

 

그 다음엔 기초석 위에 자연석을 물고기 비늘처럼 들여쌓아 교각을 만들었다.  대체로 30×40㎝의 자연석을 차곡차곡 들여쌓기를 하여 28칸의 교각을 만들었는데, 교각의 양쪽을 유선형으로 만들어 구조적으로 흐르는 물의 압력에 저항할 수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총 길이 94m, 폭3.6, 두께 1.2m 이며 교각과 교각사이는 0.8m 정도 떨어져 있다.

 

 

그 다음 단계로 장대석 얹기이다. 튼튼한 기초와 교각을 쌓은 후에 교각과 교각을 잇고 사람의 발이 닿을 수 있는 장대석을 얹었는데, 장대석은 1개 또는 2개를 나란히 얹어 놓았다. 그림과 함께 상세한 설명이 되어있어 이해하기가 쉽도록 해 놓았다.

 

 

 

 

전시관에서 나와 농다리 까지는 약 250m 정도 이다. 농다리로 가는길에 우측에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소습천(일명  어수천 약수)이라고 적혀 있어서  우측으로 약 10 미터 정도 들어가보니 너른바위에 넓게 홈이 파져있고, 바닥에는 뽀글뽀글 거품이 맺힌 물방울과 물이 고여 있는 옹달샘이 있고 위쪽 바위 틈바구니에서 홈을 따라 물이 흘러내리고 있는데 이것이 어수천 약수다. 날이 맑았다면 한잔 먹어보는건데 비가와서 먹어보진 못했습니다.

 

 

농다리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이 소습천은 산비탈의 반석은 품(品)자 형을 이루고 있고, 반석 사이에서 용출되는 샘물은 연중 마를날이 없다고 한다. 이 샘물은 풍습에 좋고 안질에도 영약으로 알려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마시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 옹달샘은 어수천(御水泉) 이라고도 하는데, 세종대왕께서 안질 치료차 초정에 가시는 도중 이곳을 지나갈때 이 샘물을 마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이 소문이 알려지자 인근지역의 아낙네들은 치마로 병풍을 만들어치고 목욕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곳이 천년의 세월을 머금은 진천농교 입니다. 정말 역사깊고 고귀한 우리 문화재 이지요. 막상 와보니 예상헸던 것보다 훨씬 정교하고 웅장했습니다.

 

 

농다리의 아래쪽에서 본 모습입니다.  건너편 산꼭대기 천년정에서 흘러내리는 시원스런 인공폭포가 농다리와 어우러져 더욱 멋진 모습을 자아냅니다.  

 

 

어느 학교에서 현장 학습을 나온 모양입니다 학생들이 줄을지어 다리를 건너오고 있네요.

 

 

비가 온 뒤라서 돌 다리가 미끄러울 까봐 조심조심 건너는 모습입니다.

 

 

문헌에 따르면 농다리는 "고려초 굴티 임씨 선조 임장군이 세웠으며, 붉은 사암으로 음양을 배합하여 하늘의 수인 28수에 따라 28칸으로 물고기 비늘처럼 들여쌓기로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경술국치이후 일제 치하에서 3칸을 매몰시켜 25칸 이던것을 2008년에 다시 3칸을 복원한것 이라고 한다. 

 

 

진천 농다리는 국토해양부에서 주관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선정되었을 만큼 다리의 자연 경관과 우수성을 인정받은 곳 입니다.

 

 

농다리 명칭의 유래에  돌다리의 모양이 검붉은 몸의 마디마디를 힘차게 움직이며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상서로운 지네의 형상이라고 하여 지네 라는 뜻을 가진 농(籠)자를 붙여 '농다리'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지네가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형상이군요

 

 

농다리를 건너와 천년정으로 올라가는 수변 산책로 입니다.

 

 

 

 

 

 

돌을 물고기비늘처럼 안으로 차곡차곡 들여쌓기 하여 크기가 다른 돌을 적절히 배합해 서로 물리게 하여 쌓았는데 폭은 대략 4미터에서 6미터이며 위로 갈수록 점점 폭이 좁아져 빠른 유속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 되었다고 합니다

 

 

세세히 들여다보고 또 봐도 우리조상들의 지혜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삼국통일의 대 위업을 달성했던 신라 김유신 장군의 출생지 이기도 한  진천은 예로부터 수해와 냉해가 없어 농사가 잘 되었고 인심이 후덕하여 살기 좋은 곳이라, 예로부터 "살아서 머물만한 고을" 이라 하여  "생거진천" 으로 불리어 온 곳 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