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발칸/5.보스니아 헤르체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거듭난 모스타르(Mostar)-발칸여행/보스니아

cowboy 2012. 11. 12. 07:00

 

잔혹한 인종청소가 있던곳에서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거듭나는 모스타르(Mostar)

여행일 2012-08-27

 

메주고리예를 떠난 나의 여정은, 몇년전 까지만 해도 다리하나를 사이에 두고 종교간 처절한 전쟁이 벌어졌던 보스니아의 모스타르 (Mostar)에 왔습니다.  2,000여년 역사의 고풍스런 도시 모스타르남북으로 네레트바강이 흐르고, 그 위로 "오래된 다리"라는 뜻의 스타리모스트(Stari Most),모스타리가 동서를 잇고있다

 

이 도시명은 길이 29m, 높이 25m의 단일 교각으로 이뤄진 아치형의 이 다리에서 유래 했다고 하며 유럽에서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진 다리중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스타리 모스트의  아름다움과 오랜 역사는 유네스코로 하여금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게 하였다. 하지만 모스타리가  증언하는 이 도시의 역사피로 얼룩져 있었으니...

 

 

고대 로마 제국이 동·서 로마로 분열될때 그 경계선이 되었던 보스니아 지역에는 카톨릭과 동방정교가 함께 전파되었고,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 이후에는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옛날 모스타르  사람들은 다리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를 이해하며 살아왔으나, 종교와 민족주의적,  내전은 이들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전쟁 전 이슬람인 보스니아계와 카톨릭인 크로아티아 그리고 세르비아 정교회인 세르비아인들이 평화롭게 지내던 모스타르는 한순간에 내전에 휩싸여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도시로 전락했다.

 

 


세르비아 공화국은 1992년 유고 연방에서 독립후 20세기 최악의 인종 청소가 자행된 보스니아 내전을 일으킨다. 무슬림은 세르비아 민병대가 퇴각하자, 이번엔 크로아티아계의 손에 인종청소를 당한다. 내전의 상처는 3,000 여명이 학살되고 1,500여명이 실종 됐으며, 시민의 절반이 도시를 떠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때 모스타리크로아티아계의 포격으로 1993년 11월 9일 10시 15분 붕괴되었다고 한다. 사진속의 성당은 모스타르 다리 서쪽 지역의 카톨릭 지역에 세워져 있는 성당이며  전쟁 후 지속되는 보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내 곳곳에는 아직도 그때의 전쟁 상흔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마치 벌집과도 같은 건물의 총탄 자국이 당시의 처참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쟁의 상처는 아름답던 도시의 건물뿐 아니라 어린아이들 가슴속 깊이 남아 아직도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다가와 흡사 우리나라 6.25 사변직후의 상황을 연상하게 하고 있었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나라의 모든 경제 기반이 무너지고 경제는 추락했으며 수천명이 사망하고 수백만의 피난민 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상처들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빠른 속도로 평화는 정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내의 중심인 모스타리쪽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니다.

 

 

네레트바강은 서기 285년 로마가 동서로 분열할 때 국경을 이뤘던 곳으로, 로마 카톨릭과 정교, 서 로마 와  동 로마 제국이 각축하는 전선이었다고 한다.  15세기 오스만투르크족(터키)이 발칸반도를 지배하게 되면이슬람이 가세하였고, 다행히도 오스만의 개방적 종교 정책은 이슬람, 정교, 가톨릭의 공존과,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 그리고 개종한 무슬림이 서로 상생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모스타르는 문화적 용광로가 되었고, 소통과 융합의 한가운데는 1556년 술탄 슐레이만 1세의 명에 따라 미말 하이레틴이 세운 모스타리가 있었다. 여행객들이 모스타르에 오면 제일먼저 가는 곳이 이곳이다.

 

 

오스만 터키 시절 지어져 400여년 동안 이슬람과 카톨릭계의 상생을 상징했던 다리가 끊어지면서 하루아침에 서로에 대한 증오의 상징이 됐었다.  하지만 전후 수년에 걸쳐 강바닥에 흩어진 돌조각들을 일일이 찾아내는등 모스타리는 각고의 노력 끝에 지난 2004년 유엔과 터키 등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복원되었고 현재는 여행객들의 길이 끊이지 않 평화의 상징이 됐다.

 


모스타리 다리 입구 등 곳곳에는 전쟁으로 다리가 끊어졌던 "93년 그날을 잊지말자"는 구호가
돌에 새겨져 세워져 있었다  

 

 

 

 

1993년 크로아티아계의 폭격으로 파괴 되었던 당시의 모스타리 사진...(펌)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 라고 불리는 ‘모스타리 다리’는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 모스타르의 상징이자 보스니아내 민족 간 화해를 염원하는 징표이다. 스타리 모스트 최초에는 나무로 만든 다리였으나, 스만 제국의 황금기 때인 1557년 술탄 술레이만 1세에 의해 길이30m, 폭 5m, 높이 25m의 아치형 석조 다리로 개조되었는데, 1,088개의 하얀 돌을 사용하여 9년 동안의 공사 끝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네레트바강은 에메랄드빛 색깔을 띠고 있는데 강이라기 하기엔 개울만큼 규모가 좁지만

 아드리아를 향해 흘러가고 있는 강물임이 틀림이 없다.

 

 

특히 이곳 모스타르에서는 매년 7월이면 네레트바강 높이 25m 모스타리 다리 위에 레트바강으로 뛰어내리는 다이빙 축제가 벌어진다고 한다 

 

 

 

때 마침 그곳에서 동호회 인지 단체로 다이빙과 수영을 즐기던 발칸인들이 나에게 사진을 부탁하기에 찍어서 메일로 보내줬는데 그뒤 멜을 주고 받으며 말은 통하지 않지만 페이스북 친구도 맺고 가끔 안부를 주고받는 글로벌 친구들이 되었다.

 

내전중에 파괴되어 사라진 모스타리 다리는, 강바닥에 가라앉은 파괴된  잔해들을 찾아내어 복구하였으며 이제 내전을 겪은 두 민족의 평화를 염원하는 상징이 된 모스타리 다리와 그 주변 구 시가지는 2005년 유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었다. 역사적인 이곳에 왔으니 인증샷 하나~~..

 

 

서쪽의 카톨릭계 지역에 있는 산꼭대기에 초대형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펌 사진)

동쪽의 이슬람지역에 있는 베레츠산 에서 내려다본 모스타르 시내 하얀 화살표 부분이 스타리 모스트 이다. 네레트바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처절한 내전을 겪었던 모스타르는 이재 점점 평화와 화합을 찾아가고 있다.

 

 

모스타리 다리에서 메흐메드 파샤 모스크(Mehmed Pasha`s Mosque) 이슬람 사원이 있는 길로 들어서면 강을 따라 50여m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거리의 모스타르의 중심브라체 페지카(Brace Fejica) 거리가 나온다.

 

 

바닥 전체에 호박돌로 깔려진 골목길을 따라 양쪽으로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과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이 많은 호박돌들은 어디서 난것이길래 이렇게 온통 길바닥에 깔아논 걸까?

 

 

메흐메드 파샤 모스크 옆 강가에서 바라본 모스타리이다.. 다리 왼편의 건물은 예전엔 다리통제소 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다리 오른쪽의 건물은 예전엔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라고..

 

 

심지어는 지붕에도 돌을 올려 놓았는데 기와도 아니고...흡사 우리나라 너와집 지붕같기도 하다.

 

 

 

다시 뒤돌아서 다리를 건너 카톨릭 지역의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나오는데,  이수영 가이드님이 400 여년전의 터키 커피하우스레스토랑 이었던 곳이라고  알려줘서 들어가 보았는데,

 

 

모스타르 에서 가장 큰 레스토랑 이었다고 한다. 안으로 들아가면 터키 전통 하우스 처럼 중앙에 정원이 있고 레스토랑이 있다.

 

 

다시 다리를 건너 카톨릭계 지역으로 와 주차장에서 버스를 타고 모스타르를 떠나 사라예보로 향한다.

 

 

버스 창밖으로 스쳐지나는 길옆에는 지난 내전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묘지가... 한참을 이런 광경이 펼쳐질만큼 많은 사람이 희생 되었음을 알 수 가 있었다.  종교가 무엇이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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