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의 쓰라린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가는 보스니아 사라예보
(여행일:2012-08-28)
1992년 3월 유고 슬라비아로 부터 분리·독립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이슬람계,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 민족 간의 분쟁으로 내전의 중심지가 되었던 사라예보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문화권이 접하는 곳에 위치하여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의 건물이 뒤섞여 있는 진기한 광경을 엿볼 수 있다.
1949년 설립된 대학과 지방박물관, 근대적인 철도역과 비행장이 있으며, 새로운 근대 주택가도 건설 되어 있는 이곳은 1914년 6월 발생한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암살사건이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역사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시내를 흐르는 밀야츠카 강변 라틴다리의 현장 주변에는 이 사건을 기념하는 작은박물관이 있고 시내에는 이슬람풍의 거리와 시장, 다수의 모스크·성당 등이 있다
이 모스크는 라틴다리로 가는중에 보았던 550년전에 지어진 밀라츠카 강변의 “황제모스크” 이다 1480년 보스니아 그리스도교에 의해 파괴된 후 1566년 술래이만 황제가 현재의 모습으로 건립했다고 한다. 모스크안에는 목욕탕과 방앗간, 그리고 수도사들의 묘지도 있다고 하는데 들어가보진 않았다. .
시가지에는 고대 유적지가 시내 한복판에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구 시가지에 서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멋진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사라예보...
이 건축물은 보스니아의 정교회로 1868년에 완공된 뉴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이 정교회는 오스만 터키의 술탄과 당시 터키와는 배척 관계였던 러시아의 기부금으로 지은 건물이라고 하는데 1868년에 화합의 상징으로 지었다고 하며 교회 안에는 의자가 없이 서서 예배를 본다.
그런데 특이한것은 이곳은 양력 1월 7일이 크리스마스 라고 하는데 ㅎㅎㅎ 그리고 그 이후부터 새해 맞이를 한다고 한다. 크림색 고운 건물이 까마득하게 높다.
유럽엔 어느 도시가 다 그렇듯 버스틀이 참 예쁘게 치장을 많이 한다
자유광장에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와 사람의 조형물이 만들어져 있다.
보스니아 사라예보 로마 카톨릭 대성당으로 사라예보 기독교의 상징인 이 건축물은 파리의 노틀담 성당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네오고딕 양식과 로마네스크의 건축 양식을 혼합하여 1884년부터 1889년 까지 건축되었으며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수용인원이 1200명이다.
가톨릭이 국교였던 합스부르크 제국이 보스니아를 지배하는 정신적인 상징이기도 한 성당은 양쪽으로 하늘 높이 솟아있는 2개의 탑과 아치형의 입구에 조각 장식이 성스럽고 예술적이다.
내부 정면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답다. 보스니아 내전 등으로 여러 차례 파괴되었으나 재건되었다.
사라예보는 1973년 4월 개최된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이에리사·정현숙 선수 등이 여자단체전을 석권하여 처음으로 한국탁구가 세계제패를 이룬 곳이다. 그리고 1984년에는 이 도시에서 제14회 동계 올림픽이 열리기도 한 곳이다.
길거리 청소부가 오토바이처럼 생긴 대형 진공청소기로 길거리를 청소하고 있다
스타리 그라드 자치제에 있는 바슈카르지아 인근에 있는 가지후스레프 베그모스크 이다
이슬람교 사원, 가지 후스레프 베그 모스크(Gazi Husrev-Beg's Mosque)이다. 이 모스크는 사라예보를 대표 하는 이슬람식 건축물로 당시 보스니아를 통치하던 ‘가지 후스레프 베그’의 지시로 1530년~1531에 걸쳐 완성되었다.
사라예보 구시가지인 바슈카르지아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26m의 웅장한 초록색 돔이 눈길을 끄는 이사원은 보스니아 내전 중에 많이 파괴 되었으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지역의 이슬람 국가들의 지원에 의해 1996년에 모두 복원되었다고 한다.
가지 후스레프 베그는 보스니아를 통치했던 터키인 으로 모스크 와 학교, 도서관 등 많은 시설들을 짓는 등 사라예보를 위하여 큰 공헌을한 사람이다. 이 모스크의 정원에는 가지 후스레프 베그의 시신을 안치한 석관이 있다. 이곳의 이슬람 사원은 발칸의 10대 사원중의 하나라고 한다
위와 아래사진은 가지 후스레프베그 이슬람 사원 맞은편에 있는 이슬람 학교라고 한다
이곳 골목에는 있는 16세기 무역상인들이 묵었던 모리카한 여관으로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져 있다. 16세기 전반에 카라반을 위한 숙소로 지어진 건물로 40개의 방에 3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방 외에도 공동의 거실, 상품 창고와 마굿간도 있었단다.
지금은 변호사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고 하는데 넓은 복도에는 작품들이 전시 되어져 있었다. 목재로 지어진 여관 건물은 채광을 위해 천정을 과학적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독특한 모습의 천정에는 문을 만들어 빛이 들어오게 해 어두운 복도와 거실을 밝게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갔을때에는 그림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독특한 그림들이었다.
건물 아래층은 역시 물건을 파는 상점이었다.
하얀 자갈 로 덮힌 터키 장인의 거리 바슈차르시아(Bascarsija)는 우리나라 인사동과 같은 곳이다.
바슈차르시아 거리로 들어서자 여기저기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름이 아니라 장인들이 주석으로 생활용품을 만드느라 두들기던 망치 소리였다. 우리의 방짜유기를 만드는 그런 터키 장인의 거리였다.
이곳에는 터키로 부터 금속공예기술을 그대로 간직한 거리로 예쁘고 독특한 은 공예품들이 참 많았다.
터키 장인 거리인 바슈차르시아 거리는 보스니아 내전 중 파괴 되어 최근 3년에 걸쳐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했다고 한다. 반들거리는 대리석으로 보도를 깔거나 하얀 조약돌을 바닥에 깔아 걷기 좋게 하기도 해 놓았다.
특히 장신구들이 많이 있었는데, 물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나도 그 곳에서 은도금 주전자와 컵세트를 기념품으로 사왔다
이곳이 바슈차르시아(Bascarsija)의 중앙 광장이다.
어린아이 하나가 고양이와 장난을 치고 있는데 고양이가 제법 귀엽게 사람을 놀린다
1992부터~1995년말까지 벌어진 보스니아 내전은 보스니아인 48%, 세르비아인 38%, 크로아티아인 14%인데 20여만명의 희생자와 230여만명의 난민을 발생시켰다. 특히 스레브레니차 지역에서의 인종청소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특급전범 라트코 믈라디치 의 이슬람 계열 주민 8,300여명을 집단 학살한 사건은 끔찍하기로 유명하다
도시곳곳에서 혹은 마을마다 양쪽의 스나이퍼 들에의해 무차별 총탄이 비오듯 쏟아지던 보스니아는 도시나 변두리나 곳곳에 아직도 그 당시의 총탄을 맞은 흔적이 상흔처럼 곳곳에 남아 있지만 현지 주민들은 의외로 밝고 친절한것이 내전의 쓰라린 아픔이 서서히 아물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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