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경상도

[안동여행]- 병산서원의 머슴뒷간 달팽이 화장실 '통시'를 보셨나요?

cowboy 2012. 12. 13. 07:00

[안동여행]- 병산서원의 머슴뒷간 달팽이 화장실 '통시'를 보셨나요?

 

 

아침에 부용대에 들려 신이빚었다는 물돌이동 하회마을을 조망하고 난뒤 하회마을로 가는길에

병산서원에 잠간들렸다. 고려때부터 사림의 교육기관 이었던 병산서원은 당초엔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을 1572년인 선조 5년에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선생이 지금의 병산으로

옮긴것이다 이후 1614년 병산서원으로 개칭한뒤 오늘에 이르게 된것입니다.

 

 

조선시대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수 많은 학자를 배출해낸 병산서원은 1868년인

고종5년에 대원군서원 철폐령이 내렸던 때에도 훼손되지 않고 보호되었던 서원이다

 

 

한편, 병산서원은 일제 강점기인 1921년에는 강당을, 1937년에는 사당을 각각 다시지어 대대적인

보수를 하고 매년 3월중순과 9월 중순에 향사례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서원의 첫 대문인 복례문이다. 복례(復禮) 라는 이름은 논어 <克己復禮爲仁>에서 따온것이며,

이는 공자의 가르침을 함축한 문구로, "자기를 낮추고 예(禮)로 돌아가는것이 곧 인(仁)이다"는

 유학의 정신을 표현해 놓은 깊은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입교당 중건일기(1921)에 의하면 서원의 측면인 만대루 동편에 있었던 것을 이전한 것이라 

하는데  병산의 험한 형세를 피하고자 했던 풍수지리학적인 원리가 담겨있다고....

 

 

만대루(晩對樓) 병산서원대표 할만한 매우 아름다운 건축물로 건축과 조형미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자연지형과 소재를 그대로 이용하여 지은 정면7칸, 측면 2칸의 누각으로

자연학습과 휴식복합공간 이라고 한다.

 

팔작기와지붕홑 처마로 된 웅장한 만대루는 인공적인 서원건축과 자연사이에 한국 서원건축

백미로 꼽힌다고 한다. 만대루 기둥 사이로 보이는 병산낙동강은 흡사 7폭 병풍을 보는듯

한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입교당(立敎堂) 은 서원의 가장 핵심적인 건물인 강당으로, 서원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입교당(立敎堂)의 원래의 명칭은 숭교당(崇敎堂) 이었으며, 명륜당 이라고도 불렸다. 병산서원의 중앙에 위치

하고 있는 입교당(立敎堂)을 가운데로, 동쪽의 명성재(明誠齋)와 서쪽의 경의재(敬義齋), 세 부분으로 나뉜다.

 

양쪽 방에는 온돌을 들이고 중앙의 강학당은 3칸의 대청으로 개방하였는데, 툇마루가 마련된 명성재 에는

서원의 원장(院長)이 기거했으며, 서쪽의 경의재는 이른바 교무실에 해당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다  

 

 

입교당과 만대루 사이의 마당을 가운데로 하고 동쪽과 서쪽에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마주하고 있다.

 

 

유생들의 기숙사였던 두 건물은 똑같이 크고 작은 2개의 방과 가운데 1칸 마루로 구성되었다.
강당쪽의 작은 방은 학생회장격인 유사(有司)의 독방이거나 서적을 보관하는 장서실 이었으며

 

 

2칸 규모의 큰 방은 학생들이 단체로 기거하는 방이었다. 좌고우저(左高右低)의
원리를 쫓아 동재에는 상급생들이, 서재에는 하급생들이 기거 하였다고 한다.

 

 

장판각(藏板閣)은 책을 인쇄할 때 쓰이는 목판(冊版)과 유물을 보관하던 곳으로, 입교당 후면 왼쪽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도리가 없는 구조이며, 습기를 피하기 위해 정면에 모두 판문(板門)을 달았다.

 

화마(火魔)를 막기 위해서 다른 건물과 거리를 두어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하였다. 서원의 명문도를 평가하는

주요 기준 가운데 하나는 바로 판본의 소장량이다. 따라서 책을 발간하는 목판은 서원의 소중한 재산이었다

 

 

1607년 서애 류성룡 선생이 타계하자 정경세(鄭經世) 등 지방 유림의 공의로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613년(광해군5)에 서애 선생의 사당으로 존덕사(尊德祠)를 창건하고 류성룡 선생셋째아들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서원에서 가장 윗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구조이며 풍판이 설치된 맞배지붕 건물이다. 변형된 익공 양식의 겹처마로 단청되어 있으며

 전면 좌우에 계단을 두고 있다. 존덕사 앞에는 정료대라는 기둥이 있는데 야간 조명이 필요한 곳에 세워 놓은 석

조물로 노주석이라고도 한다. 솔가지나 기름통을 올려놓고 불을 밝혔다. 마당 좌.우에 1쌍이 있으며 팔각형 기둥

모양으로 이는 주역의 팔괘를 의미한다.

 

 

전사청(典祀廳)은 사당에 올릴 제수를 준비하는 곳으로 사당과 한 울타리 안에 두는 것이 일반적인데,

병산서원의 경우에는 전사청과 사당이 각각 독립된 영역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는 아래쪽에 있는 주소
(廚所) 건물과 중심축을 맞춤으로써 전사청으로 올라오는 제수를 마련하는 주소의 작업을 충실히 지휘

감독하기 위함이다. 존덕사의 오른편으로 자리하고 있다.

 

 

병산서원앞 뜰과 주변에는 특히 배롱나무가 상당수 심어져 있어 봄에 백일홍이 필때면 경치가 장관이다.

 

 

 

 뒷간입니다  설명이 따로 필요없겠지요? 위에 있는 두장의 사진은 양반뒷간 입니다. 두 그림을 비교하면

쉽게 확인 되시겠지만, 아래의 '머슴뒷간'과는 외형적으로도 큰 격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달팽이 뒷간병산서원 밖 주소(廚所) 앞에 있는 화장실이다. 진흙 돌담의 시작 부분이 끝 부분에 가리도록

둥글게 감아 세워 놓았는데, 그 모양새 에서 이름을 따왔다. 출입문을 달아 놓지 않아도 안의 사람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배려한 구조이다.


지붕이 따로 없는 이 하늘 열린 '달팽이 뒷간'은 유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일꾼들이 사용하던 것인데, 400여

년전 서원건물과 함께 지어졌으며, 옛 기록에는 대나무로 벽을 둘렀다고도 전해진다. 병산서원의 부속건물에
포함되어 사적 제 206호(1977년)로 지정되었다. 2003년 보수 작업이 이루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달팽이 모양을 닮은 '머슴뒷간'은 '통시'라고도 불리워 졌답니다. 왜냐구요?

 

쾌하구나~, 원~ 도 하구나..! 이해 되시나요? ㅎㅎㅎ

(예로부터 전해오는 2행시라고 하는군요.^^;)       (자료참조 :병산서원홈피)

 

 

 

 

 병산서원(屛山書院 ) 사적 제260호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    T : 054-t853-2172

http://hahoe2.and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