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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폐허의 절대적 아름다움...파테푸르 시크리 (Fatehpur Sikri)

cowboy 2012. 3. 12. 06:00

천도 14년만에 비운의 도시로 버려진 파테푸르 시크리 (Fatehpur Sikri)

(여행일 2009-03-15)

 

타지마할의 도시 아그라에서 오토릭샤를 타고 50 여분만 벗어나면 무너지고 부서진 성곽 사이로 곱게 피어난 붉은도시 파테푸르 시크리 (Fatehpur Sikri) 가 모습을 드러낸다. 파테푸르 시크리는 한때, 무굴제국의 수도였다가 버려진 사연 깊은 도시로, 걷는 걸음마다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에 대한 애잔한슬픔스며나와 여행객의 발목을 잡는다. 인도 전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무굴제국의 전성기를 열던 아크바르(Akbar)황제에게도 고민은 있었는데 바로 제위에 오른지 13년이 지날 때까지 아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황제는 사람들을 시켜 여저기 수소문결과 바로 오늘날의 파테푸르 시크리에 은거하고 있던 성자 ‘샤이크 살림 치스티(Shaikh Salim Chisti)를 찾아냈다. 황제는 그를 직접만나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부탁했고, 성자는 아들을 예언했다. 그리고 이듬해 성자예언에 따라 아들을 얻게 되니, 황제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무모한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바로 샤이크  살림 치스티가 은둔하고 있던 파테푸르 시크리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크바르 황제는 10여년에 걸쳐 벌판 위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수도를 아그라에서 이곳으로 옮겼지만, 이곳에는 신도시를 뒷받침 해줄 물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황제는 인공호수를 만드는 등의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허사였고, 천도를 한지 불과 14년 만에 파테푸르시크리를 버리고 다시 아그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400년 동안 이곳은 폐허로 방치되었다...많은 여행자들에게 파테뿌르 시크리가 강한 인상을주는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방치된 폐허의 절대적 아름다움 때문. 한때 쳐다보지도 못했을 법한 부서진 궁전의돌틈 사이에 삐죽이 솟아있는 들풀의 자연스러움이 여행자들을 매료시킨다. 유적지가 줄수있는 최고의 만에 빠져보고 싶다면 파테뿌르 시크리를 빼놓지 말아야 할것이다

 

 

높이가 무려 54m에 이르는 승리의 문(Buland Darwaza)..자미 마스지드의 정문이기도 한 이 문은 일명 승리의문(Gate of Victory) 이라고도 불리는 문으로,  1576년에 구자라트를 정벌한 아크바르 황제가 승리를 기념하기위해 세운 개선문으로, 섬세한 문양과 웅장한 자태가 어우러지며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파테푸르시크리를 들어가려면 승리의문을 통해 들어가야 하며 안에는 신발을 신을수 없다.때문에 문앞에는 이렇게 신발을 맡아 보관해주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신발을 들고들어 갈 수도 없기에 별 수없이 신발을 벗고 맡겨놓고 들어간다...

 

 

한편, 승리의 문에 달려있는 대형 목조대문에는 말굽들이 박혀있었는데 전쟁에 승리한 말들의 말굽을 박아놓았다고 하며 그것들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속설때문에ㅎㅎ빤질빤질한 말굽들...화려하진 않지만 웅장함이 돋보이는 모스크 이다.

 

 

승리의 문을 통과하면 한눈에 담기 힘들 정도로 넓은 광장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파테푸르 시크리 최고의 장소는 자미 마스지드사원 한가운데 자리한 샤이크 살림 치스티의 무덤이다. 사원 한가운데 순백의 대리석으로 지어진성자의 무덤에는 지금도 아들을 바라는 수많은 여인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에는 샤티스의 무덤 뿐만이 아니라 주변에는 다른 무덤들도 상당히 많았다..

 

 

대리석으로 만든 관들이  건물안에도 즐비하고...

 


 광장 뒤편 은밀한곳에는  비밀스런 통로가 하나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아그라까지 뚫려있는 35Km의 비밀통로의 입구라고 하는데, 사실인지......스토리텔링인지는.......

 

 

이슬람 사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사원 안은 신상을 만들지 말라는 이슬람의 가르침 때문인지 예상보다 너무 썰렁해서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동물 등 움직이는 것의 장식도 하지 않는 이슬람의 교리 때문인지 장식이라고는 꽃이나 별 모양의 조각 뿐이었고 덩그라니 작은 홀만 있었다.

 

 

건물 안쪽의 흰대리석 건물은 황제에게 아들을 점지해준 "수피 성자 셰이끄 살림 치스띠"의 무덤. 오늘날 까지도 아들이없는 인도여인들의 끝없는 기원이 이어지는곳이다.

 

 

그들은 한손에는 꽃을, 다른 한손에는 붉은 실을 가지고 무덤에 찾아와 꽃은 성자에게 바치고, 실은 절박한 마음을 담아 창틀에 묶어둔다. 촘촘히 묶인수만 가닥의 실은 서로 먼저 성자의 눈에 들려는 듯 바람을 타고 파르르 몸을 떤다.

 

 

별모양의 창살밖으로  승리의문이 웅장하게 들어온다

 

 

왕궁(Royal palace)는 아크바르 황제시절.무굴문화의 꽃을 피웠던 본거지로 파테뿌르 시크리 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는곳으로  아크바르의 장남을 낳은 조디바이의 궁전.등을 비롯하여 악바르 황제가 총애했던 권신인 라자 버발을 위한 "버발바반" 고아 주 출신의 기독교 신자였던 아크바르 황제의 부인 미리암을 위해 지어진 황금궁전. 5층으로 지어진 황제의 시녀들이 머물던 "판츠마할" 왕이 개인 면담소로 활용했던 "디와니카스" 왕의 공식 업무를 도맡아보던 알현실 "디와니암" 등이 있는 곳이다.

 

 

부러질듯 앙상한 돌기둥으로 받혀진 정교한 조각들은 조금은 뿌연 하늘과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사암이 무른 돌이라서 비교적 쉽게 깎인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솜씨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한 조각들이 건물을 가득 뒤덮고 있다.

 

왕궁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물은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판치 마할(Panch Mahal)이다. 황제의 후궁과 시녀들만 머물렀다는 판치 마할은 벽 없이 176개의 기둥만으로 이뤄져 바람이 자유롭게 드나든다. 그 앞으로는 황제가 시녀들을 말 삼아 장기를즐겼다는 파치시 정원(Pachisi Courtyard)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신선한 정오의 파테푸르 시크리 왕궁은너무나 고요해서 쓸쓸하기까지 하더라구요 인도의 무굴제국의 비운의 수도였던 파테푸르 시크리는 겨우 14년 동안만 수도로 이용되었던 곳이지만, 붉은 빛의 사암을 깎아 만든 어마어마한 규모의 궁전은 찬란했던 과거를 조금이나마 짐작 할 수 있게 해줍니다

 

 

피로 물들어 버린 듯한 새빨간 건물들은 이 지역에서 많이 나오는 사암을 사용해 건축했기 때문입니다. 나무나 다른 재료를 쓰지 않고 순수하게 돌을 깎아 쌓아올린 건축물들은 생각보다 그 높이가 꽤 높았습니다.

 

 

코끼리 조각, 잡초가 무성한 건물 주변의 모습, 홀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높은 망루...

 

 

 

사람이 없는 건축물은 죽은 건축물이나 마찬가지. 어쩌면 구조물이라는 말이 더 잘어울릴지도.14년의 영광을 뒤로하고 언덕위에 홀로 쓸쓸히 남은 파테푸르 시크리의 페허는 아름다우면서도 왠지모르게  외로워 보였습니다. 왕궁한가운데 호수를 만들고 그안에 연회석을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멋진곳은 다름아닌 마굿간으로 아래의 둥근 구멍들은 말고삐를 매어놓던  구멍이라고 한다

 

 

결국 파테푸르 시크리는 짧은 영화만 간직한 채 아그라에 수도의 자리를 내어주고 버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400년간 철저하게 잊혀졌다....198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표적인 인도의 문화 유산이지만 반나절이면 돌아볼 수 있는 정도의 규모라서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아그라와 함께 돌아보는 일정으로 방문을 한다고 합니다

 

 

파테뿌르 시크리를 관람후 아그라 숙소로 돌아오는길 너무 먼지가 많고 시끄럽고(경적엄청 울려댐) 무질서속의 질서랄까?

 

 

ㅎㅎ나름 운전 베테랑인 나보고 여기서 운전하라면 아마도 꼼짝도 못하고 한시간에 1키로도 못갈것 같았다  그런데 잘도 간다 오금이 저릴 정도로 싹싹 잘도 피해 다닌다 아마 한국에 가면 웬만한 경적 소리는 그냥 음악으로 들어야 할것 같다. 오늘은 이것으로 일정을 마치고 내일은 아그라성을 가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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