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팔/인도

아들에게 유폐된 샤 자한이 한많은 생을 마감한 아그라성

cowboy 2012. 3. 22. 06:30

 

샤 자한이 아들에게 유폐되어 생을 마감한 아그라성

(여행일 2009-03-15)

 

아그라 성은 인도 아그라에 위치한 성으로 타지마할과는 야무나 강을 사이에 두고 북서쪽으로 약 2.5km 떨어진 곳에 서로 마주보고 있는 성으로,  붉은 사암의 성채와 내부의 하얀 대리석 건물이 어우러져 웅장함과 정교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건축물이다.

 

 

 

 

아그라성(Agra Port) 은 16세기 말 무굴제국의 아크바르 대제가 수도를 델리에서 아그라로 옮기면서 건축하기 시작한 건축물로서,

 

 

아크바르는 무굴제국의 중심으로 야무나 강가에 이성을 쌓았다고 하는데, 아그라 포트(Agra Fort)라는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처음에 지어지기는 전투를 위한 군사들의 성채로 지어졌음을 알수가 있다.

 

 

아크바르는 누구인가?

중앙아시아(몽골)에서 들어와 무굴(몽골이란뜻)제국을 세운, 외지인 할아버지 바부르의 손자이며, 제2대황제인 후마윤의 아들로 태어난 아크바르는  아버지가 세르 샤에게 북인도의 제위를 빼앗기고 유랑하던 시절인 1542년 11월 서인도의 신드 지방에서 태어났다.

 

 

바부르의 뒤를 이은 후마윤은 선왕때 거듭된 전쟁으로 중앙집권적인 행정조직을 갖추지 못한채 제국을 계승 받았다. 또한, 강력한 저항세력인 아프가니스탄계를 물리치고 영토의 확장을 꾀하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쫓겨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이란으로 도망을 하게되고...

 

 

이후 사파비 왕조의 지원을 받아 1555세르 샤를 재 정복했던 후마윤이, 황제로 즉위한 다음해 사고로 사망하자 1556년 13살의 어린나이로 황제에 즉위하게된 인물인데,

 

 

즉위 초기에 나이가어려 세르 샤가 창건한 스르 왕조등, 무굴 제국에 적대하는 세력이 델리 주변에 남있어 많은 위협이 되었으나, 부친이 남긴 충신 바이람 한 이 버텨주어 아크바르는 같은해 11월5일 델리근에서 힌두교도의 군대를 격파하고, 후마윤이 재건한 왕조를 안정시키는데 성공을 한다.

 

 

아크바르는 성인이 되면서, 바이람 한 및 자신의 유모(乳母)일족 등 자신을 견재하던 세력들을 배척하고 스스로 권력을 장악한뒤, 페르시아인등 출신에 관계없이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인재들을 고루 등용하여 권력과 군사력을 강화해 자신의 무굴 제국의 세력확대에 나서 탄탄한 무굴제국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아크바르의 뒤를 이어, 아들 제항기르가 제위를 이어갔으며, 그는 부친 아크바르의 유업을 계승하여 무굴제국 기반을 어느 정도 효과적 으로 계승해 나갔다. .

 

 

그리고 제항기르 이후 형제간의 분쟁을 통해 승리하면서 왕위를 계승한 샤 자한은 특히나 건축광이라 불릴 정도로 건축에 관심이 많아 과도하게 재정을 쏟아부어 타지 마할, 델리 성, 자미 마스지드를 건설했을 뿐만 아니라  아그라을 재건축 하면서 국가재정을 과도하게 탕진하게된다.

 

 

이 건축물들은 모두 후세에 무굴제국 시대의 대표적인 작품들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타지마할특히나 그의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결부되어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관광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이곳 아그라성타지마할을 축조하면서 너무나 많은 재정을 낭비했다는 이유로 샤 자한말년에 아들 형제들의 피비린내 나는 다툼속에 정권을 잡은 그의 막내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야무나 강 너머의 타지마할이 가장 잘보이는 무삼만 버즈 (Muasamman Burj)유폐되어 있다가 끝내 여기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권을 위해서는 부모와 형제들의 정치적 희생도 불사했음을 알 수 있는대목이다

 

 

 

한편, 샤 자한의 뒤를 이어, 형제들간의 피비린내 나는 투쟁 끝에, 심지어 아버지 샤 자한 마저 아그라 성에 유폐시킨뒤 왕위에 오른 막내아들 아우랑제브는 처음부터 무굴제국을 철저하게 이슬람 세계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궁정 안의 힌두교적 요소를 없애고 사원을 파괴·폐쇄하고, 힌두교도에 대한 인두세를 차별 부과하는 등  편협된 타종교 억압정책 썼다고 한다.

 

 

 

 

 

이는 결국 많은 힌두교도의 반항과 반란을 야기시키고 결과적으로 무굴제국 쇠퇴의 한 원인이 되었으며, 이 시기에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 열강의 본격적인 인도 침입이 시작되면서 네덜란드, 프랑스를 거쳐 영국이 인도를 차지하기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

 

 

 이렇게 자기가 재건축을한 아그라성에서 막내 아들에게 유폐되어 한맣은 삶을 마감한 역사적인

아그라 성을 돌아본뒤 열차편을 이용 잔시를 거쳐 카주라호로 향한다.